나의 아이들과 아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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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문❘사단법인 메디피스 사무총장. 아힘나평화학교 학부모.

중등과정 3학년 신정한, 고등과정 3학년 신우림 두 자녀가 아힘나평화학교에 다니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아힘나는 참 소중한 인연입니다.

요즘 세상을 살면서 아이들이 학교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 동년배들과의 관계 그리고 형과 아우들과의 관계까지 청소년 시기에 꼭 필요한 인간관계를 탄탄히 세우면서 학교를 바라볼 수 있어서, 우리 아이들은 더욱 애정을 가지고 아힘나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힘나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일본 규슈 지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재외동포 교류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한국의 한 기관이 저희 단체와 유사한 역사관과 입장을 가지고 재일조선인과의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던 것이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관이 대안학교라는 얘기를 듣고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7~8년이 흘렀네요. 물론 그 학교가 저의 가장 소중한 두 아이의 보금자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 모두 일을 하고 있는 처지에 다른 대부분 아이들도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내며 인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적었습니다. 특히 우리 큰 딸은 남다른 데가 많아서 키우기가 참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고, 고난이었습니다. 부모가 방황하는 만큼 큰딸 우림이도 어린 나이에 스스로 시련을 자청했습니다. 다니던 학교에서는 문제아가 되어 있었고, 학교 선생님의 무관심한 태도에 저 역시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 때 저는 우림이를 위해서라도 학교로부터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하게 되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딸이 갈 곳이 어디일까? 몇 달 동안 우리 가족은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동료, 선후배와 의논을 거듭했었지요. 그 때 저의 머리속에 떠올랐던 곳은 재일조선인들의 우리학교와 아힘나였습니다. 이 두 곳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역사의식이었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바라보고 그 뿌리의 힘으로 생각의 힘을 키우게 만드는 곳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향했고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의 환대 속에서 학교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아힘나의 일본 프로그램에도 참여시켜보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곧장 콘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아힘나 교무실을 찾았습니다. 힘들어하는 엄마 곁을 떠나 딸과 단둘이 지내던 작은 공간에서 우리 둘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결국 딸은 친숙한 환경의 아힘나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딸에게 아힘나를 권유했던 것은 ‘역사’와 ‘생각의 힘’이었습니다. 듣는 것 같지도 않던 우림이는 요즘에 동생에게 생각의 힘을 가져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건 아빠의 보람이지요.

 

어느덧 5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픔은 잊혀졌고 상처는 사랑으로 채워졌습니다. 이제 아빠의 절친이 된, 딸 우림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림이의 엄마는 아힘나 아이들의 얼굴은 잘 모르지만 이름과 성격을 꿰뚫고 있지요. 우림이는 금요일 밤이면 엄마와 아힘나를 주제로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우림이의 마음속에는 아힘나가 너무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아힘나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커지곤 한답니다. 우림이는 졸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받아왔던 것을 이제 주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힘나가 우림이의 고향이라는 것도...

 

일본에서 아힘나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제가 아힘나를 재대로 알게 된 것은 큰딸을 통해서였습니다. 어느덧 아힘나는 저에게 신념이 되었습니다.

항상 조용하고 예쁘게만 커왔던 막내 정한이는 우림이가 아힘나에 적응을 했을 무렵,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마냥 귀여운 아이였는데, 어느덧 자신 없는 눈빛과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한이는 경쟁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아이인데, 시험을 통한 경쟁이 정한이의 마음이 닫히게 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직감적으로 정한이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우리 아들에게 아빠가 지금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들이 정말 싫어하는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아이 엄마에게 조용히 아힘나를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 주었습니다.

 

정한이가 다니던 학교를 찾아가서 담임선생님에게 아힘나를 얘기했을 때, 그 분은 무척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정한이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던 것도 아니고 조용히 잘 다니는 아이가 정규학교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정한이의 아힘나는 포기가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설득하고 아들을 차에 태우고 아힘나로 바래다주는 날, 정한이는 조용히 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 같은 좌절감. 아들은 시선을 더 먼 곳으로 던져가며 더욱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잦아질 무렵 저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들, 넌 진 게 아니라 아힘나로 가는 거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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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메디피스는 보건의료인 중심으로 활동하는 Global NGO로 한국 최초의 비종교적 보건의료전문 민간단체다. 2001년부터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3성 등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의료지원 및 빈곤감소 활동을 전개한 ‘동북아평화연대(Peace Asia) 의료위원회’로부터 독립하여, 2009년 2월에 빈곤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인류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고 책임있는 보건의료활동을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결성됐다.

신상문 한의사는 16년 전부터 메디피스 결성을 위한 고민을 해왔고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대전대 한의대를 졸업한 후 4년여간 임상경력을 쌓으면서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 국제보건학을 전공한 그는, 10년간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NGO운영 및 트레이닝을 받은 베테랑 보건의료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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