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봄의 흔적, 가는 겨울의 흔적 계곡의 물소리 점점 커지는 만큼 봄이 성큼 다가옵니다.
ⓒ 김민수
 

 

 

 

따스한 햇볕에 겨울의 흔적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계곡의 얼음장 아래서 흐르는 물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그 소리에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도망치듯 도망칩니다. 그 흐르는 물소리를 벗 삼아 계곡 근처에 피어난 꽃을 만났습니다.

 

아직은 갈색의 숲이라 그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잘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이 하나 둘 피어나고 질 무렵이면 숲은 어느새 연록의 빛으로 가득 차겠지요.

 

  
▲ 너도바람꽃 경기도 중부/ 2월 28일 오전/ 겨울 숲을 봄으로 바꿔가는 요정들
ⓒ 김민수
 

 

 

 

작은 꽃망울, 어쩌면 오늘 따스한 햇볕에 활짝 필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씨앗이 싹을 내고, 저렇게 꽃망울을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의 시간들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이불도 없이 맨 몸으로 긴 겨울밤을 보내면서도 기어이 피어난 꽃, 그들은 희망입니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라 의미 없는 것입니다.

살아가야할 의미를 상실할 때 절망하게 되는 것이니, 살아있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인 것입니다.

 

  
▲ 너도바람꽃 오전이라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오후 3시쯤이면 화들짝 기지개를 펼 것이다.
ⓒ 김민수
 

 

 

 

살아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은 끊임없이 희망을 보려는 몸부림입니다.

자신의 삶을 치고 들어오는 원하지 않는 일 조차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홀로 조용히 묵상에 잠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간절한 때에 이런저런 소식들이 들려오면 마음이 심란해 지고, 화가 납니다. '도대체 저런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모르는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지?'하며 분노하게 됩니다.

 

  
▲ 너도바람꽃 어두운 숲에서도 햇살 한 줌으로 행복하게 피어나는 꽃
ⓒ 김민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로 인해 선과 악의 분명한 모습을 보고, 그들의 속내를 제대로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너도바람꽃을 구경하면서 숲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돌아보니 낙엽의 따스한 기운 속에 숨어있던 작은 꽃이 내 발에 밟혀 짓물러 버렸습니다. 그들이 보고 싶다고, 그들을 만나겠다고,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던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적일 수 있는 것이구나 싶습니다. 기껏해야 들꽃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내 욕심(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이상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 너도바람꽃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그렇게 피어나던 꽃들은 셀 수 없이 피어나겠죠?
ⓒ 김민수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병원에 다녀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곁에 함께 있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 곁에 있어줄 수 있을 때 잘해. 그리고 고마워. 곁에 있어줘서."

"아픔만큼 성숙해 진다더니만 하룻밤 사이에 성숙해 지셨어. 그래, 알았어. 나도 고마워."

 

집에 돌아와 한낮인데도 따스한 햇볕을 받지 못하는 꽃들을 양지로 옮겨줍니다. 햇볕을 좋아하는 놈들인데 좀 더 진즉에 옮겨줄 것을 그런 마음을 가진지 몇 년 만에 옮겨줍니다.

 

2월의 마지막 날, 겨우내 숨죽였던 봄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춘삼월 봄이 오면 여기저기서 봄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나겠지요. 그 꽃들 피어나는 계절에 우리의 역사도 화들짝 피어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겨울이 도망치듯 우리의 역사를 좀먹는 이들도 사라지겠지요. 역시, 봄은 희망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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