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유령도시로 변한 체르노빌 인근 프리퍄티 시내 놀이공원에 멈춰서 있는 대관람차. 1986년 4월26일 원전 사고 1주일 전에 완공된 이 놀이공원은 문도 열어보지 못한 채 폐쇄됐다. 체르노빌 | 이지선 기자

지난 10일 오전 9시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시내 코자츠스키 호텔 앞. 점퍼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구름 낀 회색 하늘이 찌뿌듯한 데다 비까지 흩날리는 쌀쌀한 날씨였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굳어 있다.

"체르노빌 투어 가려고 오셨어요?" "네, 그쪽도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1986년 4월26일 원전 폭발 사고 이후 폐쇄됐던 체르노빌 원전으로 하루짜리 '특별'하면서도 '위험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다.

29인승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스페인, 스위스, 캐나다, 핀란드,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기자들과 관광객들이었다.

기자는 그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을 다섯번째 방문한다는 러시아 사진기자 디마 베티아코프는 기자가 긴장한 듯 보였는지 넉살 좋게 한마디 건넸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나는 (첫 방문 이후) 아이를 세 명 낳았고 아무 문제도 없었답니다. 주의사항만 어기지 않으면 전혀 문제없어요."

여행사에서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주었다. 샌들과 같이 발등이나 발가락이 나오는 신발을 신지 말 것, 반바지나 치마를 입지 말 것, 바닥에 앉거나 물건을 두지 말 것,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군것질을 하지 말 것 등이었다.

지난 10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를 찾은 핀란드 여성들이 4호기 원자로 앞에 있는 희생자위령비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다. 4호기의 증기폭발로 체르노빌에선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체르노빌 | 이지선 기자

오전 10시가 가까운 시각 버스는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키예프를 벗어나자마자 포장이 망가진 길은 울퉁불퉁했다. 말 달구지도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차 안에서는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다큐멘터리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현장을 헬리콥터로 시찰한 것으로 알려진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 사무총장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인터뷰 장면과 블라디미르 셰브첸코를 비롯해 초기 사고현장에 촬영기사로 투입된 사람들이 찍은 빛바랜 영상들이 비쳤다. 버스 안은 그대로 침묵이었다.

2시간여를 달려 일반인들이 살 수 없는 소개구역이자 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된 원전 반경 30㎞ 지점의 디챠트키 검문소에 도착했다. 베티아코프는 " '디챠트키'는 러시아어로 '아이들'을 귀엽게 부르는 말"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런 귀여운 뜻과 지금의 삭막한 분위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검문소 요원들은 방문객의 여권과 사전에 비상안전부로부터 통보받은 여행자 명단을 대조해 검사했다.

검문소를 지나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서자 25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황량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한때는 은성했을 집단농장 건물들이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었다. 옛 소련 농업 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비옥한 흑토를 자랑하는 여느 우크라이나 시골과는 거리가 멀었다. 녹슨 철길은 강을 따라 이어졌다. 차 안의 긴장감도 더욱 높아졌다. 스페인에서 온 여행객 샨티 빌라르델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말을 건넸더니, "원래 이렇게 남들이 가지 않는 특별한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 평양도 다녀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 원전 인근 지역의 출입을 올해 2월부터 일반 여행객들에게 개방했다. 빌라르델처럼 '모험' 차원에서 체르노빌을 찾는 사람들을 '체르노빌 스토커'라고 부른다.

일행은 통제구역관리청이 쓰고 있는 임시건물에 다시 멈췄다. 관리청 측은 방사성물질 노출로 건강이 나빠지거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크라이나 당국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받았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다시 달렸다.

임시건물에서부터 일행과 함께 버스를 탄 관리청 소속 니콜라이 파닌은 한 손에는 마이크를, 다른 한 손에는
가이거 방사능 계측기를 들고 통제구역 내부상황을 설명했다. 상주하는 주민은 없고 원전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임시로 기거할 뿐이라고 한다. 이들도 15일은 통제구역 내부에서 다른 15일은 통제구역 밖에서 보내거나 또는 4일을 근무하면 3일을 쉬는 식으로 교대근무를 한다. 파닌은 통제구역 내의 방사능 수준은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다 가는 여행객들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는 수준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정작 파닌 자신의 건강이 염려됐다. 7개월째 통제구역 안에서 근무하고 있는 파닌은 15일을 일하면 15일을 밖에 나가서 보낸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안정적인 계측기의 삑삑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버스가 떠나갈 듯이 울려댔다. 파닌은 "우리가 '붉은 숲'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성 낙진이 나무와 풀을 훑고 지나가면서 숲 전체가 붉게 변해버린 데서 따온 이름이다. 숲에 남은 방사성물질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버스는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유령도시로 변한 프리퍄티로 향했다.

체르노빌과 프리퍄티 투어를 마치고 키예프로 돌아오는 길, 한 여성 참가자가 방사성물질 오염 여부를 검사받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3㎞ 떨어진 계획도시 프리퍄티는 폭발 사고 36시간 만에 주민 4만5000여명이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곳이다. 도시는 폐허 그 자체로 남았다. 하루 전에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
원자력공학 박사 이리나 라분스키는 "프리퍄티 전체에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고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페인트를 묻히기 싫으면 맨손으로는 아무것도 잡지 말라는 당부도 곁들였다. "함부로 벽이나 나무에 기대거나 잔해물을 건드리지도 말고, 가만히 들어갔다가 살포시 나오라"고 한 그의 조언이 생각났다.

도시 중앙에 위치한 폴리시아 호텔은 2년 정도 운영된 당시로선 최신식 호텔이었지만 뼈대만 남았다. 깨진 유리조각과 흐트러진 건물 잔해를 밟고 8층까지 올라가자 도시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핀란드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여행을 온 미미는 몇 년 전부터 체르노빌에 올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조경학을 공부하는 미미는 "사고로 모두가 빠져나가고 난 뒤 그 현장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호텔의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8층까지 자라 올라온 나무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저 나무를 한번 보세요. 인위적인 파괴의 아픔 이후에 꿋꿋이 피어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호텔 옆 놀이공원에는 대관람차와 범퍼카 등 놀이기구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고 일주일 전 완공된 놀이공원은 개장을 하지도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체르노빌 투어 안내를 맡은 관리청 직원이 지난 10일 체르노빌 원전 주변 잔디 위에 내려놓은 계측기. 방사성물질의 농도는 풀 숲이나 잔디에서 더 높게 계측된다.책과 책상, 인형과 마스크가 그대로 널브러진 학교와 유치원 건물 등을 둘러보며 프리퍄티에서 45분가량을 보낸 뒤 오후 2시쯤 원전 부속 건물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바로 사고가 발생한 4호기 원자로로 향했다. 원전 건물은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었고 석관을 둘러싼 아치형의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원전의 특정 부분만을 한 장소에서 찍는 앵글이 강요됐다.

계측기는 5~8마이크로시버트(μSv)로 평상시보다 40배 정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거대한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둘러싸여 있는 4호기를 배경으로 여행객들은 연방 사진을 찍어댔다. 이렇게 사람들이 체르노빌을 찾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파닌에게 물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아픈 현장이지만 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직접 보고 배우고 느끼고 갔으면 좋겠어요. 체르노빌이 그런 역사의 현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키예프로 돌아오는 길, 통제가 해제되는 30㎞ 지점에서 체르노빌을 떠나는 여행자들의 방사성물질 오염 여부를 측정했다. 철제 검색대와 비슷한 형태의 계측기에 올라가 양손을 계기판에 갖다 대면 측정이 완료된다.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물질에 노출됐을 경우 파란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불과 1초 남짓의 기다림의 순간. 무사통과를 알리는 파란불이 켜졌다. 그리고 체르노빌을 빠져나왔다.

<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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