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끼가야 타에코 할머니와의 만남

지금 생각해 보면 야끼가야 타에코 할머니를 만난 것은 신의 뜻이었을 것이다. 90세가 훨씬 넘으셨지만 할머니의 눈매는 흐려지지 않았으며, 총기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8월,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미래의 역사를 써가는 아이들>이란 주제로  도쿄 히노시의 후지노모리(ふじの森)에서 캠프를 열게 되었을 때였다.   

아힘나일본지부인 Asia Peace Builders의 이사인 다카하시 신코씨와 아힘나의 실무진들은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왜곡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깨닫게 하는 캠프를 열자고 하였다. 그래야만 차세대 아이들이 한일관계의 불행했던 역사를 올바로 청산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캠프의 방향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지 과거사에서 집중조명되지 않았으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1923년 9월,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제노사이드]사건의 진실을 통해 조작된 적대자상이 만들어낸 엄청난 비극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고 이러한 현실이 오늘날에 존재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하는 문제제기를 하자고 했던 것이 프로그램 기획자들의 의도였다. 

2006년 할머니는 이 캠프의 강연자로 초청되어 통역포함 1시간 남짓한 특강을 해 주셨다. 특강을 통해 참가자들이 듣고 싶어했던 것은 1923년에 목격하신 간토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은 구체적 목격과 증언보다는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정말 일반적인 이야기를 마치 꿈결속에서 들려주시는 듯한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편안하게 들려 주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야끼가야 카타에코 할머니가 10세 때 목격했던 1923년의 9월 기억은 너무도 잔인하여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어 할머니를 괴롭혀 온 정신적 외상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그 현장을 목격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여 들려주기에는  할머니에게 너무도 괴로운 요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한ㆍ일ㆍ재일의 청소년들에게 적대적 감정을 버리고 큰 우주에서 살아가는 축복받은 생명체로 동시대를 평화롭게 살아가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었다. 

 

궁금해졌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1923의 진실들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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