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또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를 볼 때 일단 걱정부터 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어떤 생각으로 봐야 할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여간 고민되는 일이 아니다. ‘나만의 생각을 가지고 싶다.’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내 배경지식을 믿을 수 있을까?’와 같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트러블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귀향에 대한 소감을 짧게 이야기하면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던’ 영화였다. 그러니까 내용이 쉽고, 이해하기에 별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예민한 주제지만,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영화적 요소를 부각시킨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민감한 주제의 영화에게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인 선택이다. 특히 영화가 이슈화될수록 그에 걸 맞는 심도 깊은 내용을 요구 받게 된다. 영화가 워낙 파급력 있는 대중매체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사건의 내용을 극적 요소로 풀어갔다는 것이다, 난 그것을 무당이라는 컨셉이 증명해준다고 확신한다.

 

따지고 보면 무당은 뜬금없다. 위안부 문제와 전혀 개연성 없는 이 무당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요소다.

보통 불호의 사람들은 사건에 대한 더 깊은 내용을 원한다. 물론 극영화에게 다큐 수준의 내용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극적 요소가 그들이 원한 내용을 대신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면, 이 영화의 평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그냥 극영화로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어쨌든 무당은 클라이맥스는 물론, 오히려 실제 사건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OST, BGM과의 시너지가 또한 상당하다.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과 함께 흘러나오는 소리는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토속적이고, 향토적이도록 만들었다. 궁극적으로 무당은 극적 요소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무당의 의의는 동생 대신 살아남은 죄책감을 가진 할머니와, 그 죄책감을 해소시켜줄 유일한 사람인 동생 사이의 매개체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무당은 자신의 역할을 끝마쳤다.

 

결론적으로 무당을 영화에 넣은 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조정래 감독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한’을 중심으로, 정서적인 접근을 통하여 더욱 다가가기 쉬운 영화를 만든 것이다.

나는 그 의도가 의아했다.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정서적 접근은 보통 비논리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역사에 관한 토론은 어디까지나 팩트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런 의식은 이제 상식으로 여겨진다. 그 상식에 대해 조정래 감독은 아픔을 공유하려고 한다.

 

그것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 지금의 10대들의 역사의식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과거 여러 운동, 시위와 함께 살아온, 진보 성향이 압도적이었던 부모님 세대와는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아온 세대다. 익명의 특성 상, 설득하려는 사람만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라온 세대다. 팩트가 진리가 된 세대다. 남 비방하기가 유머의 기본 출발인 세대다.

그런 10대들이 이 아픔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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