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천 아힘나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힘나 가족들께

필리핀에 온지 벌써 3개월이나 되었네요. 다르게는 여러분들과 떨어지게 된지 3개월이나 되었다는 말이죠.

사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저의 집보다 더욱 집 같은 학교를 떠나는 것이 말이죠.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지낸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외롭고, 여러분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의 그런 고민들과 불편한 잠자리로 인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말이죠. 그럴수록 여러분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핸드폰도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다른 꿈봉에 비해 말이죠.) 한 번 연락하게 되면 더욱 그리워져 이곳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우리 학교의 이미지도 안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하며 말이죠.

꿈꾸는봉사단 1기인 은서, 규원이가 너무나도 잘 해냈다는 말을 듣고 더욱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선배인 친구들이 정말 잘 했는데, 후배인 제가 좋지 못한 면모를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모든 일을 긴장하며 임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바쁜 시간을 지냈습니다. 항상 긴장하며 생활한 탓에 몸도 빨리 피로해지고 말입니다.(여드름이 무척 많이 났어요. ㅠㅠ 규원이는 많이 없어졌는데 말이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은서, 규원이 선배들이 무엇인가를 잘 해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무척 열심히 했다는 것. 그거였습니다. 뛰어난 언어도, 뛰어난 머리도, 뛰어난 재능도 없는 저는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전부터 익히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머리에 달고 이 곳에 왔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해!’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어!’의 마인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생활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많은 일들이 주어지게 되어 하루를 마치면 ‘드디어 끝났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후로는 ‘내일은 무슨 일이 주어질까? 재밌겠다.’로 말이죠. 그 후로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죠.

 

그럼 여기서 무엇을 배우며 살고 있나 궁금하시죠?? 네!!

처음에 필리핀에 와서 사람들을 볼 때에는 정말 불행하겠다는 생각만을 했습니다. 저의 잣대를 놓고 판단한 것이죠.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봐서 그런지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저들을 도와줘야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의 그릇된 생각은 제 또래의 한 아이를 보며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 캠프 사업장 안의 풀을 베는 한 소년을 보았습니다. 뙤약볕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일만 해서 하루에 7500원을 번다고 하더군요. 그가 너무 불쌍하게만 보였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그가 저에게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서 주었습니다.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그에게서는 힘듦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구리를 잡아 행복해 하는 한 아이의 얼굴이었죠, 그를 보며, 나에게 주어진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지만 감사할 줄 몰랐고, 불평만 해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저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에 조금씩 감사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학교를 알게 되어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감사, 그로서 이곳에 오게 된 것에 대한 감사, 내 생각과 성품들이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 부모님 곁을 떠나서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 등등을 말이죠. 그 외에도 자연재해와 정부의 도심재개발정책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갈 곳을 잃게 된 지역의 많은 사람들 또한 각자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결코, 그들은 연민의 눈길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었고, 새로운 시작에 박수갈채를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 외에 현지인 분들에게 부모님, 선생님들 다음으로의 사랑을 베푸는 방법도 배우고 있습니다. 낯선 우리들이지만 정말 아들, 딸처럼 대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모습에 하루하루 너무 감사드리며 지내고 있어요. 그 밖에 삽질, 톱질, 곡괭이질 또한 현지인들처럼 잘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를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곳 분들의 삽질은 대략 조쌤의 주먹밥과 같습니다. 무척이나 잘 하신다는 말이죠.

 

농사기구를 잘 다루게 된 배경에는 저희 꿈봉의 올가닉 치킨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지역의 환경 때문에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닭죽 사업 파일럿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지고 있습니다. 일반양계와는 다른 바닥구조 때문에 3주간 삽질과 곡괭이질을 하였고, 닭죽에 들어가는 채소들 또한 직접 키우기 위해 농기구들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통한 수익 창출을 위해 올가닉 산란계 또한 키워지려고 합니다. 노른자에 이쑤시개가 25개나 꽂히게 되거든요. 그만큼 건강한 계란이라는 것이죠. 병아리가 들어올 날짜만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된다면, 우리 학교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조쌤의 프렌치토스트의 맛이 2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유치원 3, 4살 아이들에게 힐링을 받으며 살고 있고, 현지 스탭들로부터 많은 사랑 또한 받고 있습니다. 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꿈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더 이상 여러분들과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무척이나 큽니다. 담별샘의 훈계도, 동산샘의 연구보고서 팀도, 조쌤의 아침도, 지선샘의 꽁치조림 또한 먹지 못하게 된다는 것. 그 외에 여러분들과 눈을 치우지 못한다는 것. 그 것뿐입니다. 얼른 돌아가서 당신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잘 생활하고 버텨야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만날 수 있을 거 아녜요. 또 그렇게 해야 다음의 동생들도 올 수 있으니까요.^^ 너무 졸업식 날 멘트를 한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여러분 1월에 절대 안 오시길 바라지 말입니다. 너무 애매하잖아요? 그니까 와 주세요.! 아무쪼록 추운 겨울 시원하게 지내시고, 내년에 보도록 할게요. 사진 몇 장 같이 보내도 되겠죠? 보기 싫어도 한 번만 봐주세요. 사랑합니다. 모두들 진심으로.

 

2015년 11월 27일 금요일 새벽 1시 45분 코고는 대승이 옆에서

언제나 고맙고, 미안하고, 찌질한 동천 올림

 

키워드

#N
저작권자 © 아우내마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