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셨던 그날,

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설마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곁을 떠난 그날에도 여전히 숲에는 생명이 약동하더군요.
아무리 큰 나무라도 처음에는 이렇게 작습니다.
싹을 틔웠다고 다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보스럽게 싹을 틔웁니다.
‘이 바보들아, 그만해!’ 할까요? 아니, 고맙다 해야겠지요.
 

 

 

한 마리 새가 알에서 깨어나고 하늘을 날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어떤 놈들은 먹이사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살려면 저보다 약한 놈들을 잡아먹어야 할 것입니다. 자연에서의 먹이사슬에는 축적이란 것이 없습니다.
간혹 저장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사실 자연은 더 풍성해집니다. 숲의 다람쥐들이 알밤을 감춰두는 까닭에 밤도 새싹을 틔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청솔모가 아니었다면 잣도 싹을 틔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싹쓸이, 올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질경이 꽃


길가에 흔하디흔한 질경이입니다.

밟혀야 사는 놈들이고, 밟힘을 통해서 제 영역을 넓혀가는 놈입니다. 참으로 바보와 같은 삶을 사는 놈들입니다. 봉하마을 길가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질경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질경이처럼 짓밟혀도 살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그냥 그렇게 놓아버린 삶이 너무도 슬펐습니다. 제아무리 생명력 강하기로 유명한 뿌리째 캐내면 질경이라도 살 수 없지요.

 

 

 

 

 


바람에 이슬에 날마다 집 단장을 해야 하는 거미집, 아침이라고 말끔합니다.

상처를 입고, 찢어지고, 덕지덕지 붙은 이물질들 때문에 날마다 집 단장을 하지만 그런 수고를 감수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거미들이겠지요.

모두가 바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잣나무 새싹 중에서 나무가 되는 것이 있고, 호랑지빠귀 새끼 중에는 하늘을 날고 또 알을 품는 것이 있을 것이요, 거들떠보지도 않는 질경이 작은 꽃으로 말미암아 질경이는 점점 퍼져갈 것입니다. 날마다 상처받는 거미집이지만 늘 새 단장을 하며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 모두의 행위는 거룩한 행위요, 바보 같은 생명의 행위입니다.

그들이 있어 자연이 풍성해지듯, 바보가 있어 이 땅에 희망이 있습니다.
바보 대통령의 죽음으로 상처입은 사람들 모두는 바보들입니다. 그 바보들이 있어 이 땅에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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