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리 농악, 그 전통을 찾아서. 김호환 선생님을 만나다

웃다리 농악 그 전통을 찾아서

 

아힘나평화학교의 매주 수요일은 마을프로젝트가 있는 날이다.

이 프로젝트는 ‘안성맞춤 장인 정신을 이어갈 장인체험 활동’의 일환으로 아힘나 평화학교 학생들이 안성지역의 예술인을 찾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이다.  한 팀에 5~6명씩 다섯팀으로 나누어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만나고 싶은 장인(예술인)을 정하여 만날 약속을 잡고, 인터뷰 질문 내용을 결정하고 기록하는 모든 일을 학생들 스스로 하는 프로젝트로 우리 팀은 평택 웃다리농악 전수자이신 김호환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학교에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에 위치한 김호환 선생님댁까지 찾아가는 길은 멀었다. 두번 버스를 갈아타고 힘들게 찾아갔을 때 우리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몸이 지쳐 짜증이 날 즈음 선생님 댁에 도착하였는데 김호환 선생님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김호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시다 지금은 웃다리농악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자 교사 일을 그만 두셨다고 하신다.

평택 웃다리농악을 교사로 일하실 때 알게 되셨고, 그 후로 농악에 푹 빠져 지금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자녀들도 평택 웃다리농악의 특별회원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전통문화를 가르치시고 전통문화를 이어가려 하신다. 마지막으로 농악에 관심이 있거나 배우려하는 사람들에게 "농악을 하려면 나부터 즐겨라" 라고 조언해주셨다.

웃다리농악 전수자 김호환 선생님

 

김호환선생님과 나눈 풍물과 웃다리 농악에 대해서는 김재하군(아힘나평화학교 증등 2년, 김호환선생님의 아들)이 정리한 글을 싣는다.

 

풍물의 멋

 

이제 첫 번째 순서로는 우선 풍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풍물이 생기게 된 이유는 옛날 사람들이 밥상이나 잔치상에서 흥이 나서 밥그릇이나 국그릇 등을 두둘기며 놀다가 생겨났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렇게 풍물이 생겨났다면 오늘날의 풍물이 있기까지의 발전이 있어야 할텐데 이 풍물은 옛날 불교인들이 어떤 한 마을에 가서 사찰을 건립이나 수리, 그리고 사답을 마련하기 위해 치배 즉 풍물쟁이들을 모아 민가를 돌며 모금활동을 하면서 발달하였습니다.

 

그리고 풍물의 악기를 알아보자면 대표적 악기로는 꽹가리, 장구, 북, 징이 있는데,  이 네가지 악기를 사물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물은 사찰에 있는 범종, 목어, 운판, 법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과 아까 설명했던 불교인들이 치배들을 모아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옛날 풍물놀이가 한 때 불교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풍물에도 성격에 따라 네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두레풍물은 농사일이 시작되는 날에 풍물을 치며 작업을 준비하고,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 풍물패가 앞장서서 들로 나가고 논으로 들어가기 전 풍물을 치고, 마지막 농사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면서 풍물을 치는 농사에 흥을 더하는 풍물패입니다.

다음으로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나 풍물놀이를 보여주던 유랑연애 집단입니다.

 

그 다음 걸립패는 남사당패와 비슷한데 동네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집마다 다니며 풍악을 울려주고 돈이나 곡식을 얻기 위해 만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연희농악은 배우가 분장을 하여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재주를 부리는 것입니다.

 

다음은 풍물의 한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사물놀이는 김덕수를 비롯한 몇 명의 풍물쟁이들이 모여 농악가락을 무대예술, 즉 현대적 연주형태로 탈바꿈 하고자하여 노력 끝에 한 국악연주단체인 민속악회 시나위의 정기연주회에서 사물놀이를 시도했던 것이 최초입니다. 이 사물놀이가락은 농악가락과는 많이 다른데 이 사물놀이가락은 보통 삼도의 농악가락을 재구성한 것인데 이 삼도는 영남, 호남, 중부지방 즉 경상도지역의 농악가락을 재구성 한 것입니다.

 

이 사물놀이는 크게 앉은반과 선반 즉 판굿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앉은반은 우리가 흔희 말하는 앉아서 사물놀이 가락을 치는 것이고, 선반은 흔히 사물판굿이라 하는데 이것은 사물놀이가락을 서서 상모를 돌리며 율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사물판굿은 농악과 사물놀이 앉은반의 중간 형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물판굿은 풍물과 사물놀이의 모든 멋진 점만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멋진 점은 사물놀이의 빠르면서도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여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풍물의 상모돌리기입니다. 이 상모돌리기 중 찍음상 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이 기술이 많이 사용됩니다. 그리고 상쇠가 쓰는 상모가 털로 된 화려한 북포입니다. 또한 사물놀이 가락에 맞는 여러 가지 멋있는 율동이나 동작이 멋을 한층 더합니다.

 

그리고 이 사물판굿은 사물놀이처럼 네 가지 악기밖에 없어서 많은 인원 없이 넷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물판굿은 모든 사람이 한사람씩 나와 보여주는 악기마다 다른 맛을 내는 개인놀이도 멋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사물판굿이 멋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 전에 보았던 광개토의 판굿도 사물판굿입니다.

광개토는 사물판굿에 판소리나 탈춤 그리고 비보이 댄스를 더하여 굉장히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점이 사물판굿은 가락을 풀었다 조였다 하면서 긴장감을 주어야하는데 그 긴장감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광개토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빨리 몰아치기만해서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사물놀이와 풍물의 차이점은 우선 풍물은 다수인원이 상모를 돌리며 율동이나 대형을 행하는 놀이지만 사물놀이는 말 그대로 네 가지 악기를 이용해 삼도의 풍물가락을 재구성하여 앉아서하는 놀이입니다.

 

그리고 풍물은 옛날 전통 거의 그대로 내려져오는 실외에서 하는 놀이지만 사물놀이는 현대적으로 삼도의 풍물가락을 재구성하여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고 실내공연을 목적으로 만든 놀이입니다.

 

이렇게 사물놀이와 풍물은 많이 다릅니다. 그러니 앞으로 사물놀이와 풍물을 헷갈려 아무렇게나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웃다리 지역 풍물의 진정한 멋을 알아보면, 우선 웃다리의 풍물판굿의 멋은 남사당패라는 전문연희집단의 영향으로 판굿의 가락이 꽹가리를 중심으로 밝고 빠르지만 부드럽고 세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어서 듣는 이들을 흥겹게 하며 판이 빈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락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줍니다. 또 가락의 종류가 많지 않지만 변주가 다양합니다. 그리고 웃다리에서는 공연을 하는 모든 사람이(기수와 태평소 제외) 상모를 돌리며 계속해서 대형을 바꾸어서 보는 이에게 흥을 더합니다.

 

그리고 개인놀이로는 상모놀이, 상쇠놀음, 설장구, 북개인놀이, 버나놀이, 열두발상모놀이가 있습니다.

 

이 상모개인놀이는 상모꾼이 나와서 상모를 돌리며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는 것인데 이 재주 중 상모개인놀이에서 하이라이트는 자반뒤집기입니다. 이 자반뒤집기의 의미는 옛날 집 주인이 흥겨운 풍물공연을 보고 신이나 고등어자반을 구워온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다음으로 상쇠놀음은 상쇠가 나와 꽹가리를 치며 머리에 쓴 북상을 돌리며 재주를 보이는 것인데 이 웃다리 상쇠의 특징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북상을 털북포로 쓰지 않고 종이북상으로 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뭐가 다르냐면 다른 털북포 같은 것은 크고 돌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웃다리의 종이북상은 작고 돌리기가 쉬워서 빠르고 아기자기한 게 웃다리 상쇠의 멋입니다.

다음으로 설장구인데 설장구는 보통 삼도의 가락을 조합하여 가락에 따라 가락의 강약조절을 하여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주며 그에 걸 맞는 몸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 개인놀이가 있은데 이 북 개인놀이는 잘 하지는 않지만 북에 걸맞게 힘있는 가락과 동작 등이 멋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욕심을 부려 북 개인놀이나 장구개인놀이에서 까지 양상(상모를 양쪽으로 빠르게 치는 기술)을 치거나 심지어는 자반을 도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멋있기 보다는 각 악기에 맞지않는 재주를 넣어서 오히려 멋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버나놀이가 있는데 버나는 접시처럼 동그랗게 생긴 것을 채로 돌려서 서로 주고받으며 노는 재주입니다. 그리고 이 버나놀이는 그냥 버나를 가지고 노는 것도 멋있지만 버나꾼들이 서로 주고받는 재미있는 입담도 하나의 멋입니다.

 

마지막으로 열두발상모 개인놀이는 기다란 상모를 돌리며 재주를 부리는 건데 이 놀이는 개인놀이의 마지막에 하여서 지금까지 놀았던 판을 정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웃다리 풍물의 가장 큰 특징은 무동입니다.

이 무동은 다른 곳에도 있기는 하지만 웃다리 무동이 다른 이유는 무동이 아이들로 구성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동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옛날 여자아이 분장을 한 무동과 두 번째로는 옛날 동자승의 옷을 입은 사미라는 아이들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아이들을 통틀어 무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무동들은 풍물 판굿을 할 때 춤을 추며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무동의 하이라이트는 무동타기입니다. 무동타기는 무동들이 어른들 어깨위에 올라가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주는 것 입니다.

 

요즘 무동놀이는 단무동, 맞동리, 만경창파 돛대사위, 앞뒤 곤두, 삼동이나 오무동을 하는데 가끔씩 오무동과 비슷한 동거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회초리 사무동이라는 세 명의 어른이 탑을 쌓은 다음 그 위에 사미가 올라가 사층 쌓는 어려운 기술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기술이 아쉽게도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복원되지 못한 회초리 사무동이나 각 악기에 맞는 맛을 살리지 않고 욕심만 부려서 제 멋을 살리지 못하는 일 등 요즘 풍물의 제멋을 살리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앞으로 풍물에 대해 더 공부하여 숨어있는 멋을 찾아 더 이상 훼손 되지 않고 사람들이 제 멋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필자가 2013년 4월 10일(당시 중등 2학년) 마을프로젝트를 마치고 쓴 글입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아우내마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