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의 유쾌한 노랫말 - <싸구려 커피>와 <느리게 걷자>를 중심으로 -

‘장기하와 얼굴들’의 유쾌한 노랫말

-<싸구려 커피>와 <느리게 걷자>를 중심으로-

 

장기하 신드롬의 의미

2008년 ‘제 10회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에 출전하면서 존재를 알린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디음악계뿐만 아니라, 한국대중음악사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장기하의 음악은 특이한 창법과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내면서 새것에 목마른 음악계의 갈증을 해결했다. 모든 신드롬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시대적 욕망과 맞물려 있다. 장기하 신드롬 역시 분출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한국사회의 욕망이 장기하라는 출구를 찾으면서 나타난 사회적 현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또 그들은 인디라는 특수성을 재빨리 대중 속으로 끌어들인 뛰어난 시대감각이 돋보였다. 그러면서 홍대 앞과 인디밴드가 때 아닌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손수 제작해 파는 앨범들 즉, 장기하와 얼굴들의 수공업 음반 판매량은 메이저 음반사의 판매량을 압도한다. 아날로그 적인 감수성이 그들의 깊은 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존 가수들과는 다른 70,80년대의 옛 사운드를 구현한다던지. 그것이 장르가 복고든 또는 트로트든 뭐든지 그들의 색깔이 담겨있다.

장기하의 출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다른 인디밴드들과는 조금은 다른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 등장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는 젊은 시기에 광범위한 계층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장기하의 음악이 철저하게 대중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 속에 청춘들의 건강한 욕망들이 수 없이 투영되어있다.

많은 청춘들이 왜 그와 함께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얻으려 하는 걸까. IMF이후에 급속하게 청년들의 실업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시의 적절하게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하의 음악은 음악의 문제를 떠나 중요한 사회적 사건으로 연구해야 한다.

 

가사, 건강한 아마추어리즘

 

특히 장기하와 얼굴들의 가사를 보면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서사적인 시 한편이 나온다. 비유와 수사가 넘쳐흐르는 시가 아니라 청춘의 고통을 그대로 애기해주는 ‘시’ 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

무거운 내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에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지를 않다 수 만번 본 것만 같다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어지러워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가사 부분

 

청년들의 신세타령을 담은 구어적 지시대명사를 사용한다. 무표정한 표정과 더불어 우스꽝스러운 동작 그리고 판소리풍의 분위기 그가 지어낸 가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음의 고조는 별로 없고 상대방을 염두에 두지 않고 혼잣말로 뇌까리는 창법이 있다.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①- 마냥

그냥 완전히 썩ˇ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희끄므레죽죽-한 저게

하ˇ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건지

저거는 뭔가 하ˇ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쿵! 하고 찧을거 같은데

-<싸구려 커피>랩 부분

 

위의 가사를 살펴보면 엄연한 라임과 리듬감이 있는 살아있는 랩이 있다. 진한 부분이나 밑줄 친 부분이 그러하다. ①“- 마냥” ②“-하니” 라는 랩을 통해서 장기하는 장단을 조절하고 있다. 그의 랩엔 판소리의 자진모리 장단이 숨어있다. 장기하 만이 할 수 있는 박자의 랩이다. 그의 랩은 특정한 글자에 구속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랩을 들으면 알 수 있는 라임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녹아들뿐더러 한국적인 랩을 만들었다. 한국 고유한 랩의 멋과 맛을 내기 시작했다. “썩ˇ어가지고” “하ˇ늘이라고” 에서 보면 그는 얼버무리면서 엉뚱한 곳에 악센트를 준다.

 

요즘 공중파 텔레비전 리얼 프로그램(예로 들면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도 잡소리를 내는 인간에 대한 친근성이다. 궁상맞고 볼품없으면서도 기죽지 않는 삼류들이 연예오락프로를 장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주도하던 방송 영역에서 오히려 이들은 끝없이 잡소리를 쏟아내면서 자신들의 자리를 잡아간다.

 

이러한 흐름에 맞물려 장기하의 랩도 궁상맞고 볼품없으면서도 기죽지 않는다. 그리고 짧은 후렴구는 여기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현실의 고달픔을 일시적으로 망각하게 한다. 대중문화에 무뚝뚝한 사람들이 이들을 본다면 만담이나 콩트로 착각 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운드와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옛날부터 늘 들어왔던 노래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면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예술적이고 문화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자본주의 시대에 만연해 있는 것이고 유아적 황당함을 표방하는 그들의 음악이 대중들의 흥미를 사로잡은 것이다. 이 촌스럽고 우물쭈물한 랩과 노래로 말이다.

 

사실 장기하 노래는 시적이라고 하기 보다는 현실적이다. 또 누군가들은 그의 음악이 88세대를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싸구려 커피’와 같은 노래 등에서 표현된다. 사실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 자체가 잡담이다.

 

곧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적당한 삶의 애환이 가볍게 제시될뿐더러 인간적인 모습이 비춰진다. 그들은 현실을 알고 직시하고 후회를 하든 깨닫든 그것은 청춘의 몫이라 생각한다. 은근슬쩍 비틀다가 그대로 웃고 마는 천연덕스러운 삼류의 모습에서 모두를 불러 모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래서 장기하의 음악은 88세대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인디밴드들과 같이 자본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 도대체 다른 인디밴드들과 무엇이 다른 걸까. 그들의 개별성에 주목해야 한다. 홍대출신이면서도 홍대적이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모습에 많은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장기하의 등장도 시대의 심리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게 청춘들이 장기하와 홍대문화에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자유, 힘을 주지 않는

 

장기하의 삼류정신은 자기만의 아우라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음악에 비극은 있으나 분노가 없고 처량함은 있지만 불경스러운 발언은 없는 것은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적당히 끌어안으면서 ‘어느 누구도 배제 하지 않는 건강한 삼류정신’ 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실의 심각함을 비껴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현실적 일 수 있다. 그들은 아무소리 없는 무의미한 저항만 하는 멈춰있는 밴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우후후)

죽을만큼 뛰다가는(우후후)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우후후)

고양이 한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점심때쯤 슬슬 일어나

가벼운 키스로 하루를 시작하고

양말을 빨아 잘 펴 널어놓고

햇빛 창가에서 차를 마셔보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우후후)

죽을만큼 뛰다가는(우후후)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느리게 걷자>가사

 

모든 게 빨라지고 스마트 해진 세상에 그들이 말하는 단어들은 조금은 우리에게 낯설다 그리고 느리다. 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려거나 비판하려는 눈으로 본다면 결코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없다. 위 가사를 보면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를 보면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 가나 미디어나 전자기기에 빠져있다. 지하철을 타더라도 혹은 공공기관에 가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화를 단절한 후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리고 장기하는 말한다. 예쁜 고양이 한 마리라도 보며 걷자고. 뛰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장기하의 음악은 희망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대신, 유머와 익살을 통해 현실을 돌파한다. 그렇다고 또 그의 음악어법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건강한 구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펙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느리게 걷자 라는 말 한마디는 위안을 던져준다. 속도에 끌려가지 말고 나 자신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특히 이 노래의 장점은 후렴구의 반복에 있다. 이 후렴구는 경쾌하게 몸을 들썩거리게 만든다.「느리게 걷자」에서 ‘워지거까 워지거까 워지거까 워지게’와 같은 사투리가 리듬을 타며 어깨를 들썩거리게 한다. 유머를 활용한 가사의 미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들은 때때로 외부에 대해 시선을 거두고 내면으로 시선을 모은다. 후렴구는 마치 산신령처럼 툭 튀어나와 금도끼를 던져놓고 숨는 것처럼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유쾌한 잡담이 주는 위안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가 앞으로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대중음악 가수를 사회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서태지와 아이들>이후로 처음이다. 장기하는 급부상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장기하의 음악이 한국 사회 청년 대중의 억눌린 내면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쾌한 자유와 거칠 것 없는 궁시렁거림은 88세대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회의 진지한 모습들을 유쾌하게 빗겨나간다. 풍자적으로 또는 익살스럽게 대응한다. 그러나 그 안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한국적인 록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보여주는 장기하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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