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진도 7.9의 강진으로 인해 일본의 수도 도쿄를 중심으로 간토(関東)지방 일대는 대재앙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대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이제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인재 곧 일본의 군대와 경찰, 그리고 민중들까지 합세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향해 달려드는 살인마들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갔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가족들과 함께 참사당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깊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조선인(朝鮮人)’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력자들과 살육의 광기에 자신을 잃어버린 일본민중들에 의해 조선인이, 아니 조선이 희생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88년 전에 일어난 조선인학살사건을 또 다시 기억하려 합니다. ‘거짓말도 자꾸 하면 진실이 된다.’는 일본 속담을 주의 깊게 음미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권력자들은 국가주의를 부추기고, 민족주의를 부추겨서、편을 가르고 갈등을 조장하여 이것을 자신들의 권력을 재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해 왔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며, 그 진실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간토 조선인학살의 진실은 이것입니다. 일본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재창출하기 위해 지진으로 혼란해진 틈을 타 ‘불령한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의 수도를 불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타고, 부녀자를 강간, 윤간하며 강도짓을 일삼고, 산업시설에 폭탄을 던지고, 불을 지르고 있다’는 등의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하자 신문사는 그 유언비어를 사실인양 그럴듯하게 보도하였으며, 민중들은 조선인들의 보도된 그대로의 일을 단 한 번도 목격한 일이 없으면서도 국가의 뜻을 따라 조선인을 향한 근거 없는 분노를 일으켜 학살의 대열에 미친 듯 참여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지진 발생 하루 만에 계엄령이 논의되고 다음 날부터 일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6천여 명이 학살된 일본국가에 의한 조선인 제노사이드였습니다.  

 

 

일본국가에 의한 강제병합100년을 맞아 한일 역사학자들과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확인한 것은 역사인식의 공유였습니다. 2007년에 조직된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는 일본과 한국에서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해마다 학살현장연구, 추도집회, 학술 심포지움, 유족 찾기, 간토사진․자료전시회를 개최해 왔습니다. 

 

 

이번 행사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거의 전 제주지역이 학살터가 되었던 제주4.3사건 역시 국가에 의한 민중 제노사이드였습니다. 이념으로 편 갈라, 서로 죽이고 죽이는 분열을 조장하였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사건이 종결된 뒤로 국가권력의 안위를 위해 치안유지법과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민중을 억압하고 권력에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간토학살사건을 제주에서 기억하려는 오늘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할 것이며, 평화를 심는 자는 평화로운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준비를 할 수 없으며, 국가의 이름으로 민중의 삶을 억압해서는 안 될 일이며, 인간의 전쟁준비를 위해 모든 자연의 생명을 앗아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해 주신 제주노회와 생명선교연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행사를 통해 제주도 대정면 인성리가 고향이었던 희생자 조묘성, 조정수, 조정하의 유족을 찾는 일에 제주시민들이 협력해 주셔서 고인들의 넋을 위로해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물어가는 일에도 한걸음의 진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주간에 걸쳐 진행되는 이 행사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뜻 깊은 마당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2011년 9월 1일

  

 

 

공동대표

고희범 김창규 박종렬 이정훈 홍성직

 

 

 

실행위원

김두홍 김민수 김종수 김효배 송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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