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세대 아우른 촛불

기성세대들 학생들에 줄 떡·주먹밥 등 준비

영상물 찍고 퍼포먼스…축제의 장으로 발전


10일 저녁 반값 등록금 실현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무대에 사과 500개가 등장했다. ‘등록금과 교육비를 걱정하는 학부모 모임’ 회원들이 준비해온 것이었다. 회원들은 사과를 반씩 쪼개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과 나눠 먹었다.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는 학생들에게 기성세대로서 ‘사과’한다는 의미였다.
이날 청계광장 주변에선 학부모, 30~40대 선배 세대와 대학생들 사이에 진심이 담긴 사과와 격려, 응원이 어우러진 화합과 축제의 장이 열렸다.
저녁 7시 청계광장에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퍼졌다. 학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의 먹을거리부터 챙겼다. 민주노총 여성연맹 조합원 20여명은 집회장소 한켠에 상을 벌이고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성연맹 이찬배 위원장은 “밥을 먹어여 힘이 난다”며 “청소노동자들도 반값 등록금 투쟁에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주먹밥은 금세 동이 났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1년 등록금 1000만원”이라는 의미로 1000줄의 김밥을 마련해 학생들의 마음을 채우기도 했다. 철원 농민회는 쌀 두가마니 분량으로 떡을 해와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철원 농민회는 “집회에 나온 학생들이 햄버거 먹는 모습을 언론보도로 봤다”며 “건강 챙기라는 의미로 떡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촛불집회에 힘을 보태기 위한 시민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오후 5시 청계광장 주변에는 학생과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은 아르바이트 노동자, 슈퍼맨 등의 배역을 맡아 청계광장과 주변 골목을 돌며 가수 와이비(YB)의 노래 ‘나는 나비’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분홍색 가발과 동물탈도 눈에 띄었다. 탁현민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트위터로 제안한 ‘립덥’ 촬영현장이었다. ‘립덥’은 립싱크와 더빙을 결합한 말로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흉내를 내는 영상물이다. 연출은 맡은 탁 교수는 “반값 등록금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라며 “기존의 집회 방식 대신 재미있고 새로운 형식으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립덥에 참여하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서 온 이춘림(49·여)씨는 “고등학생 아들 둘이 있는데 우리 같은 서민들은 앞으로 등록금 생각하면 답답하다”며 “이번 기회에 등록금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함께 온 대학생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졸업한 딸을 포함해 대학생 3명의 자녀를 둔 홍아무개(56)씨는 “등록금 문제를 뼛속까지 느낀다”며 “촛불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온 딸 홍하림(동국대 광고홍보4)씨도 “등록금 문제에 공감해 아버지와 함께 나왔다”고 웃었다.
집회 참가자들과 책을 나누는 ‘책 시위’도 이어졌다. 청년 실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청년유니온은 최근에 출간한 책 <레알청춘> 100권을 10~30대 청년들에게 나눠줬다. 이 책에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진솔한 얘기가 실렸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여한 청년들을 응원하는 의미”라고 했다.
여성계도 촛불을 함께 들었다. ‘지금당장 반값등록금 촉구 여성행동’(여성행동)은 이날 저녁 6시 서울 세종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전국여성연대 등 12개 여성단체가 모인 ‘여성행동’은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공동 줄넘기 등 퍼포먼스를 펼쳤다. 가수 박혜경, 손병휘, 노래패 우리나라, 좋아서 하는 밴드 등의 음악 공연도 집회의 열기와 흥을 돋웠다. 이승준 박태우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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