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신문

몇 해 전에 일본 후쿠오카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다. 조선인들이 강제연행을 당해 일을 했던 탄광마을이 있는 곳인데, 그곳 석탄 자료관을 둘러보다가 글도 모르던 광부가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고 싶어 탄광에서 일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아주 세밀하게 그려놓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그림을 보며 우리 마을마다 있는 면사무소나, 마을복지관을 마을의 작은 역사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나 농촌마을에서는 언제든지 기회가 닿으면 자기가 살던 마을을 떠나 도시에 나가 살고 싶어 한다. 마을에 살아가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마을에 대한 애착과 정주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언제든지 돌아볼 수 있는 '마을 역사관' 만들기 운동을 펼쳐보고 싶었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지식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교 밖의 마을 환경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정보화 사회 속에서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마을(community)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체험하는 환경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성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풍부하다. 다만 이러한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다양한 주제로 교육현장과 다양한 배움터에 제공하려 하고 또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안성에 살아가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게 해주고 싶어 하던 차에 안성신문 청소년기자단 캠프를 하며 만난 김한영 선생님께 아이들의 지역탐방을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지난 3월 15일부터 시작한 지역탐방교실은 지역탐방을 왜 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지역탐방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3월 22일 3·1운동 기념관을 시작으로 안성천(3. 29), 비봉산(4. 5), 방각본 인쇄(4. 12), 석남사(4. 19), 청룡사와 바우덕이(4. 26), 몽고의 침략과 안성(5. 3), 홍건적의 침략과 안성(5. 10), 임진왜란과 안성(5. 17), 안성의 역사문화시설들(5. 24), 칠장사(5. 24), 봉업사지(5. 31), 안성의 선사문화(6. 14), 안성의 돌부처(6. 21), 안성의 근대(6. 28) 등을 테마로 16회 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발로 둘러본 경험들은 작은 책자로도 만들어낼 계획인데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힘나 평화학교의 얼마 되지 않는 구성원은 참으로 다양하다. 새터민 청소년,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 깊이 생각하는 것을 즐겨하는 아이, 언제나 모범적인 생활에 익숙한 아이,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하는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관심사도, 이해의 깊이도 다른 아이들이 함께 하는 이 여행을 이끌어가시는 김한영 선생님께서는 무척이나 힘들 것을 알지만 아이들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이 여행을 생각하면 참으로 재미있고 기대가 된다. 아이들을 통해서 나오게 될 책자도 사뭇 궁금하다. 청소년기자단으로도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이 3·1운동 기념관을 다녀와서 작성한 소감문을 부분 소개한다.
 

 

▲     © 안성신문

"일본 사람이
진짜 이런 사람들인가요?"

수요일, 지역탐방 시간에 '3·1운동기념관'을 간다고 해서 '3·1운동'이란 것이 사람들이 운동하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 운동하는 곳에 왜 지역탐방을 가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3·1운동 기념관'에 도착해서 표를 사가지고, 전시관이라 써진 곳으로 들어가보니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체험관에서 나오는 소리가 소름이 끼치기도 하였다.
 
허리도 펼 수 없이 작은 상자같이 생긴 감옥, 하루종일 서서 지내야 하는 감옥에 들어가 직접 체험을 하면서 일본사람들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 아힘나 학교에는 일본 선생님이 계시는데 너무나 마음이 착한 분이고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잘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나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이 진짜 이런 사람들인가요?"
내가 직접 체험관에 마련된 감옥에 들어가보니 잠깐 나무상자 속에 들어가 앉았을 뿐인데 몸이 굳는 것만 같았다. 영상실에서 비디오를 보니 무기도 없이 만세만 부르면서 힘차게 나가는 한국 사람의 모습이 좋았다.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힘차게 나가겠다'라고 생각해보았다.

왕혜연(14세·새터민)
 
 
만세운동을 벌였던 우리 민족, 감동!

안성 3·1운동 기념관을 갔다와서 좀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곳에는 고문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있었는데, 좁은 벽관이나 나무상자에 계속 서 있는 것이다. 옆에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곳은 나무상자에 못까지 박혀 있었다. 참으로 괴로운 고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참고 만세운동을 벌이는 우리의 민족이 그저 자랑스럽다. 1919년 3월 1일, 그리고 그 이후의 3월 1일은 단순한 빨간 날이 아니라, 3·1운동을 참여한 모든 분들께 그리고 일본에 맞서 싸워온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는 날이어야 한다.

전지용(15세)
 
 
제암리 학살 '끔찍'

3·1운동 기념관에 갔다와서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근데 그것을 말로 표현을 잘 못하겠다.

3·1운동 기념관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벽관이다. 벽관에는 남자를 앉히고 손에다 전기고문을 하고 또 한쪽에는 여자를 앉히고 각종 고문을 하는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잔혹한 고문을 다 하였다.

그때 당시 생각한 것이 정말 옛날 일본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을 이렇게 못살게 두들겨팼구나 하는 생각에 무섭고 또, 우리 조선 사람들이 옛날에 이렇게 고생하였길래 우리가 지금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전시된 글을 읽어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은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전도와 기독교인 등 주민 30명을 제암리 교회에서 모이게 하였다. 이들을 모두 교회당에 몰아넣고 창문과 출입문을 잠그고 집중사격을 가하여 학살하기도 하였다"라는 글이다. 모든 것이 다 끔찍하게 느껴진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전개한 항일민족독립운동이었으며, 또 한국사회에 민주주의 발전을 구현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알게 되었다.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느낀 점이 많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왕소연(18세·새터민)
 
 
"나도 선조들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3·1운동 기념관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벽관, 전기고문실, 나무상자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은 벽관이다. 벽관을 보는 순간 한번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발을 무겁게 들어서 벽관을 딛고 들어가 섰는데 담별 님이 문을 닫더니 열쇠를 거는 거였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섬뜩해지면서 무서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을 막 두들겼더니 담별 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문을 열어주셨다.

그러고 나서 안을 돌면서 글들을 메모하다가 "죄인이 발에 채우는 자물쇠" "죄인이 손목에 채우는 자물쇠"라고 써 있는 글과 그 자물쇠를 보았다. 그 순간 마음이 뜨끔해졌다.

우리 선조들이 조선독립을 위해 아무 죄도 없는데 죄인의 자물쇠를 차고도 끝까지 조선 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건, 정말 조국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밝은 세상을 마련해주신 모든 선조님들께 고맙다는 인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의문 하나가 생겼다. '나도 과연 지금 우리나라가 식민지에 처했다면 우리 선조들처럼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김행복(18세·새터민)
 
 
3·1운동 기념관이 운동을 하는 곳인 줄 알았다는 아이들이 있다. 때마침 우리가 찾아간 날 어느 단체에서 2∼30명의 청소년들이 방문을 하였다. 함께 영상실에서 자료를 보는데 어찌나 소란하던지…. 또 입구에 배치된 탁본은 재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아이들에 체험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지난해에 아이들을 데리고온 적이 있는데 그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이들이 전시관을 둘러보는 사이 조금 일찍 나와 주차장에 세워진 안성시내 관광 안내지도를 보고 있는데 현철이가 묻는다. 
 
"선생님 풀물놀이가 뭐예요?" "응, 풀물놀이가 뭐야? 풍물놀이겠지."  "아니에요, 선생님 여기에 풀물놀이라고 써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안성 관광안내 지도판 여기저기에 틀린 글자가 눈에 띈다. 전시관에 잘못 표기된 한자며 영문은 제쳐두고라도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여행은 앞으로 이런 작은 것까지도 아이들의 손으로 고쳐가는 일에 함께 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 안성신문에 기고했던 기사를 옮겨왔습니다. 2006/03/28 > 
정리 / 조진경(아힘나평화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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