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공지영이 만난 곽노현 서울교육감 당선자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오른쪽)와 소설가 공지영씨가 9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하니티브이> 스튜디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진보 교육감’이 교육 수장을 맡게 됨에 따라, 앞으로 서울교육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올 전망이다. 서울시민들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세우는 이유다. <한겨레>는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씨와 곽 당선자의 대담을 통해,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곽 당선자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 9일 한겨레신문사 5층 <하니티브이>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공지영(이하 공) 선거 기간 고생 많으셨다. 법학자이자 인권 전문가로 알고 있는데 교육감에 출마한 이유가 있나?

곽노현(이하 곽) 학교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게 법의 원칙과 정신인데 이게 곧 인권이다. 인권은 약자부터 보듬어 안는 것인데, 학교 현장에서는 꼴찌와 약자들을 버리고 간다. 그런 교육은 미래를 위해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특히 ‘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쉽게 후퇴하는 걸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해답을 공교육에서 찾았다. 학교에서는 ‘참여’하지 말고 세상일에 담 쌓고 시키는 공부 열심히 해서 찍기 잘하라고 가르친다. 통제와 간섭에 길들여지니 자유도 못 배운다. 복지도 체험하지 못한다. 사회 양극화가 문제라고 하지만 그게 학교에서 그대로 현실화한다. 여기에 길들여지고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커서 10 대 90의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지난 6개월 동안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제정 책임을 맡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학교 현장을 알게 됐고 굉장한 위기의식과 함께 학교와 교육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됐다.

 

교육 현주소
인권은 없고 ‘꼴찌들’은 방치
학교가 변해야 사회도 변해

사실 저도 지난번에는 교육감 선거 때 투표를 안 했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두 분이 엄마들을 크게 자극한 것 같다. 결국 진보 교육감 6명이 당선됐다. 10대 6이다. 4년 동안 소모전이 예상되진 않나?

눈높이를 아이들에게 두면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다. 한국 교육 현실이 워낙 뒤틀려 있다 보니,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 또 어느 정책과 철학이 비교우위를 갖게 되는지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다.

주민 직선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교육감은 교육에 대한 민주적 대변인이다. 앞으로 정치권, 대학 총장에게 교육 관련 현안에 대해 발언할 것이다. 시·도 교육감 협의회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무상급식 얘기를 해보자. 예전에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을 봤는데 정말 너무 가여웠다. 부모님 돌봄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사실 경제적인 빈곤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도 아닌데 문화적, 정서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준다는 게 무섭다. 아이들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을 뿐이지, 아이가 가난하거나 부자일 수 없다. 아이들만큼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차별없이, 사회의 평균적 수준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일반적 복지를 누려야 한다. 학교에 가면 풍요와 환대가 있고 우정과 연대의식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선진국도 아이와 노인에 대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아동수당을 부잣집이라고 안 주나? 지하철 표를 부잣집 노인이라고 안 주나? 밥 한끼 차별없이 제공하는 게 보편적 복지의 첫 걸음이다.

 

무상급식
아이들 차별없는 밥 한끼가
보편적 복지로 가는 첫 걸음

엘리트 교육도 중요한 과제다. 저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교육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영재교육에 찬성한다. 하지만 제 또래 수많은 학부모가 특수목적고 때문에 가정생활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봤다. 자립형사립고 시험을 앞두고 있다며 부모가 아이에게 할머니 병문안도 못가게 하는 경우도 봤다. 이런 아이들이 국가의 지도층이 되면 병폐가 심각할 것 같다.

사실 저도 흔한 말로 엘리트 교육의 산물인데, 엘리트 교육을 받고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기란 낙타가 바늘 귀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지금 과학고·외국어고의 교육이 진짜 엘리트 교육일까? 엘리트 교육은 장점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한테 쓸데없는 특권의식을 심어주고, 공부 일변도로만 몰아가는 게 문제다. 민주사회의 지도자로 크는 데 필요한 가치관의 속살이 만들어지는 6~18살 때 끼리끼리 모아 놓고 교육하는 게 과연 옳을까?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 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뒤섞여 어울려야 한다.

제가 1981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평준화가 정착됐던 세대다. 그 세대가 요구한 민주화가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엘리트 교육의 산물로 제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저를 키운 건 8할이 현장이다. 현장에 내려가서 지도층의 무관심·몰이해 등이 밑바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과정을 안 거친 사람은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로 빠지고,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생활과 의식구조를 갖게 된다. 대학 때 서열화하는 것도 무서운데 어린 나이에 등급이 정해지고, 그게 평생 간다는 건 진짜 우울한 일이다.

 

엘리트교육
특목고·자사고 장점 있지만
쓸데없는 특권의식 심어줘

선거 출마부터 당선까지의 과정이 섭리처럼 진행됐다고 했는데, 후일담을 들려달라.

학생 인권의 렌즈를 통해서 학교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던 중 연말에 드디어 저에게 교육감 선거라는 게 다가왔다. 그 전에는 한 번도 출마할 생각을 안 했다. 제가 마당발 스타일이 아니다. 고교·대학 동창회에 10년에 한 번 나간다. 그런 사람이 선거에 나간다는 게 웃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교수단체들이 저를 추천했다고 통보를 받았다. 그 뒤에도 훌륭하신 분들과의 경선에서 단일후보가 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선 이후에도 여러 후유증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이 저를 지지하고 그만두셔서 본선 시작하기 하루 전에 100% 진짜 단일후보가 됐다. 투표용지 게재 순위 추첨에서 7번을 뽑아 많은 이들을 조바심나게 했는데, 결국 1.2%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시대정신의 강이 흐르고 있었고 제가 시대정신을 붙잡긴 한 것 같지만, 제가 잘나서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점도 있다. 35%에 득표에 그쳤는데, 이른바 민주진보 단일후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득표다. 여기에 담긴 민의가 뭘까? 이것을 정말 무겁게 생각한다. 정말 6개월 뒤쯤에는 65%의 지지를 받는 교육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곽노현표’ 혁신학교도 궁금하다.

혁신학교가 원하는 수월성은 자기주도성이다. 알아서 공부하고, 지적 흥미와 필요를 알게 해야 한다. 이 선진국형 학교를 가장 형편이 나쁜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 기존의 정책들을 급격하게 바꾸기보다는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새 표준이 낡은 표준을 대체하게 하겠다. 자기주도성을 키워주지 못하는 가짜 엘리트 교육을 몰아내고 진짜 교육을 선보이겠다.

박재동 화백이 취임준비위원장이 됐는데, 창의적으로 잘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회심의 카드였다. 박재동 화백은 대단한 교육철학과 실천을 해오신 분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하고 상호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교육전문성의 핵심이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이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든 똑같다. 게다가 학생 인권을 다룬 불후의 명작 애니메이션 <별이야기>의 ‘사람이 되거라’ 편을 제작하셨다. 제가 당선되면 인수위원장으로 모셔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

곽 당선자와 얘기를 나눠 보니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감사드린다.

 

정리 진명선 황춘화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로,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장 역임하는 등 ‘인권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 공지영씨
 
공지영씨는

1988년 <창작과비평>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등단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등의 소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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