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차 | 가나가와대 교수

ㆍ‘제국신민’서 ‘외국인’으로… 일개 관료가 간단히 ‘국적 박탈’

한국에서 재일조선인은 역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갖는 재외동포이자 디아스포라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특히 매스미디어와 대학 등 연구기관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잘 알려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재일조선인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일본의 조선 식민지지배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지금도 옛 종주국인 일본에 살고 있으나, 대부분 한국이나 조선 국적 혹은 국적 표시를 갖고 있을 뿐 일본 국적은 취득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역시 하나의 민족 집단 또는 민족 공동체의 성격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지문날인철폐 100만명 서명운동 포스터 | 출처 재일한인역사자료관도록

1945년 해방 당시 일본에는 약 240만명의 조선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95%는 한반도 남부 출신이다. 오늘날 일본에 거주하는 한반도 출신자(와 그 자손)의 명칭은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재일코리안’ 등으로 다양하다. 가장 포괄적이고 간편한 표현으로 그냥 ‘자이니치(재일)’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역사적인 개념으로 역시 ‘재일조선인’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해방을 맞아 조국에 돌아온 사람도 많지만, 재일조선인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적게는 50만명, 많게는 70만명 안팎을 유지했다. 최근에는 패망(해방) 이전부터 거주한 사람과 그 자손뿐 아니라 이른바 한국에서 새로 온 사람들도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재일조선인(한국·조선 국적)은 약 60만명이고 그 가운데 패망 이전부터의 거주자와 그 자손으로 구성된 특별영주자는 약 45만명이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혹독한 이민족 지배를 가장 첨예한 형태로 구현하는 역사의 산증인으로 근대 일본의 모순을 가장 비참한 형태로 나타내는 존재이다. 사실 재일조선인을 둘러싼 제반 문제의 원인은 무엇보다 일본의 역사와 사회 내부에 있으며 또한 분단된 조국, 불행한 역사가 새긴 근·현대 일본과 조선의 관계사에 얽혀 있다. 당연히 재일조선인의 행보는 그 자체로 재일조선인의 인간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이었다고 해도 틀림없다.

1986년 민단이 중심이 된 ‘지문날인 철폐 100만 서명운동’의 서명용지. 총 서명자수는 주최 측도 놀랄 정도인 180만명이나 됐다. 그 결과 2000년 4월 일본 정부로부터 지문날인 폐지를 이끌어냈다. | 출처 재일한인역사자료관도록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식민지지배의 결과 생겨난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매우 악랄하고 교묘한 정책을 취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는 패망 이후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더욱이 외국인등록증은 한반도에 아직 독립국가가 탄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조선’이라는 출신지역명으로 기재했다. 돌이켜보면 식민지지배 하에서 조선인이 ‘제국 신민’ 또는 ‘일본 국민’이었던 것도, 법적으로 기만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52년 4월 ‘평화조약’ 체결로 조선인(과 대만인)이 일본 국적을 상실했다는 것도 전적으로 거짓이다. 일본국 헌법 제10조에 ‘일본 국민이라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재일조선인의 ‘국적 상실(박탈)’은 법무부 민사국장의 ‘통달’로 아주 간단히 ‘실시’되고, 거기에 대해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볼 때, 일본뿐 아니라 남북의 두 정부로 인해 가혹한 차별 억압 정책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남북한 두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어쨌든, 사실은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기민(棄民)정책을 취하고 경제적으로나 다른 면에서 이용만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랫동안 반공·군사 독재정권이 계속된 한국은 재일조선인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빨갱이’라 부르고 투옥, 여권 발급 거부 등 가혹한 인권 유린을 거듭해 왔다. 배타적인 일본 정부와 결탁한 적도 종종 있고 자국민 보호의 본분을 심각하게 방기했다.

현재 재일조선인은 한국 국적 소지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이른바 ‘조선’ 국적 소지자는 매우 적어졌으나,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달리 이명박 정권은 ‘조선’ 국적 소지자에 대해 한국 입국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상기시키는 폭거이다. ‘조선’ 국적은 일본이 스스로의 책임을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부여한 기호에 불과하며, 이른바 ‘북한’ 국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무책임을 비난하고 ‘통일 조국’을 바라는 심정으로 여전히 ‘조선’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이 ‘평화와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함으로써 남북 분단의 기본적인 원인을 만들었다. 그러한 역사적인 죄과(罪過)를 모두 잊은 듯 일본 정부는 ‘한국 병합 100년’이 된 지금도 재일조선인에 대해 악질적인 차별 억압 정책을 취하고 있다. 사실 일본 사회는 한편으로 ‘한류 열풍’ 속에서도 전반적으로 ‘납치’를 구실로 ‘북한 때리기’가 거세며, 재일조선인에 대한 ‘적의’가 넘친다. 따라서 일본, 남한, 북한 세 나라의 틈새에서 사는 재일조선인, 특히 젊은 세대는 괴로운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갖기가 어려워졌다. 종종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주장도 있지만, 일본으로의 ‘귀화’는 사실 한반도와 연결된 자신의 기원을 모두 부정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가운데 재일조선인은 인간적 권리를 찾으면서 살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일본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감스러운 것은 일본 정부가 여전히 차별 억압 정책을 계속하고, 일본 국민 대부분이 그것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예를 들면, 정권 교체를 이룬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이 터무니없는 재일조선인 정책을 펴 재일조선인뿐만 아니라 양심적인 일본인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정주외국인 참정권 부여 문제, 고등학교 수업료 무상화법안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이다.

이 가운데 재일조선인이 중심이 된 정주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부여 문제는 야당 시절에 민주당이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한 법안이나, 정권을 잡은 뒤 오히려 이에 소극적이 되어 법안 제출을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다. 참정권이라 해도 실제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선거권, 피선거권 가운데 투표권만 부여한다는 극히 제한적인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유럽 각국에서는 외국인 참정권을 부여하는 나라가 많다. 그것은 50~60년대의 경제성장기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인 것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그 점에서 일본이 식민지통치 시대에 노동력으로 중시되고 그 후에도 계속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지금까지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역시 시대착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외국인’이라는 배타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정주외국인을 억누르려는 것은 무엇보다 일본인의 역사 인식이 왜곡되었다는 증거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재일조선인을 고려해 정주외국인에게 지방자치단체의 선거권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하나는 고등학교 수업료 무상화에서 ‘조선학교(조총련 계열의 민족학교)’를 제외한 문제이다, 이는 ‘납치’를 이유로 아이들의 학습권도 부정하려는 것이다. 이미 무상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나 ‘조선이 밉다’는 이유로 민족학교에만 재정지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때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결의식 때문에 일본 정부와 손을 잡고 민족학교를 억압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일본 정부가 혼자 하고 이를 한국 정부가 묵인하는 구도이다.

재일조선인은 재외동포이고, 소수민족, 디아스포라이다. 이 문제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재일조선인 스스로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들도 자기 문제로 깊이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이를 통해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더욱 세계로 열린 역사인식과 사회의식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정주외국인의 참정권 문제

일본 헌법은 제15조 제1항에서 ‘공무원을 선정하고 파면하는 것은 국민 고유의 권리이다’, 제43조 제1항에서 ‘두 의원(議院)은 전 국민을 대표 선거하는 의원(議員)으로 조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에서는 정주외국인의 참정권 부여에 반대하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 참정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으로 볼 때 합리적인 반대 이유는 아니다. 하물며 재일조선인은 단지 ‘외국인’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기인한 ‘옛 식민지 출신자’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지역 투표권 부여의 기운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 1995년 대법원은 참정권 부여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 조선학교의 고교 무상화 제외

고등학생에게 수업료를 지원하는 법안이 최근 일본 국회에서 의결, 통과되었다. 국제학교와 중국학교 등 외국인학교도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그러나 법안 심의 과정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고, 조선학교에 대해 법안 통과 후 별도의 검증기관을 두고 심사하게 되었다. 제3자 기관의 판단에 맡긴다는 술책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판 봉쇄를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과는 국교가 없고, 납치문제가 미해결이며, 경제제재의 일환이라는 등 교육 지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유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양심적인 신문, 대학의 교원, 노조 등은 정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에 있는 10개 조선고등학교 학생들 가운데 약 절반은 한국 국적이고, 부모 중 한 명이 일본인인 일본 국적의 자녀도 적지 않다.

 

 

 

 

 

■ 글쓴이 윤건차는

재일조선인 2세인 윤건차씨는 가나가와대 교수로 일본 근대사상사, 한국 현대사상사, 근대 한·일관계사, 한·일 현대시(詩)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교토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 근대교육의 사상과 운동」(청사), 「현대일본의 역사의식」(한길사), 「일본-그 국가·민족·국민」(일월서각),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지식인과 그 사상 1980~90년대」(당대), 「한일 근대사상의 교착」(문화과학사),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1945년 이후의 한국·일본·재일조선인」(창비), 「윤건차 시집 겨울숲」(화남출판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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