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 불성립론’ 화두 던진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일본은 지난 100년 동안 주변 나라들을 복속시켜 혼자 사는 길을 따랐습니다. 그런 선택으로는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 이태진(67) 서울대 명예교수

이태진(67·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8년 전인 1992년 5월, 을사조약·병합조약 등 이른바 ‘국권 침탈’ 조약들이 불법적으로 체결됐다는 주장을 공식화해 한·일 학계에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그의 논지를 한 마디로 줄이면 “1904~10년 대한제국과 일제가 맺은 국권 침탈조약들은 너무나 많은 결함과 불법성을 갖고 있어 도저히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한일병합 불성립론’이다. 이 교수의 ‘불성립론’은 “한일병합은 일제의 폭력과 강제에 의해 이뤄진 것이므로 무효”라는 상식 수준의 ‘불법론’을 넘어선 논의로 국사학계 뿐 아니라 국제법 학계까지 토론의 장에 끌어들였다.

찬반논쟁 계속돼 9년간 학술회의만 10번
“대한제국 국권 침탈조약 불법요소 많아”

당연히 일본 학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 교수의 불성립론을 둘러싸고 98년부터 2000년까지 일본 시사월간지 <세카이>에서 찬반론자들의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일본쪽 반론으로는 ‘고종이 사실은 을사조약을 뒤에서 지시했다’는 하라다 타마키 교수(현립히로시마대학)의 ‘고종 협상 지시설’, ‘을사조약 등에는 위임·비준 등의 절차가 필요없었다’는 운노 휴쿠쥬 명예교수(메이지대학)의 ‘약식 조약론’, ‘국가 대표자에 대한 강박이 아닌 국가에 대한 강박은 유효하다’는 사카모토 시케키 교수(고베대학 대학원)의 ‘국가 강박론’ 등이 나왔다. 이 교수는 “처음엔 찬반론자 모두 모여 토론을 진행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대론자들이 찬성론자들의 반론에 전혀 대응을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둘러싼 한·일간의 논쟁은 한국연구소·하버드-옌칭연구소 등 하버드대학 내 4개 연구소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2001년 1월~2009년 4월 무려 열번에 걸친 국제 학술회의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한일병합 뿐 아니라 미국에 의한 하와이 강점 등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식민지배 전반으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이 100년 전 선택한 길로는 앞으로 동아시아의 평화 공존의 역사는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한다면 정치인이든 학자든 ‘한국 통치가 합법이었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100년 전의 잘못된 선택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글·사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키워드

#N
저작권자 © 아우내마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