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아힘나평화학교의 가을걷이 행사

현대 농업이 모두 기계화되었다 해도 농부의 마음과 정성에 따라 건강한 성장과 튼실한 열매가 결정된다. 하물며 기계사용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힘을 믿고 사람의 힘을 더해 자신들의 먹거리를 스스로 생산해가는 일에 있어 농부의 마음과 정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ahimnahyun 아힘나평화학교 농업전공 김현철(18)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아힘나평화학교의 전공과정에 있는 김현철(18)군은 장래희망이 농업인이다. 그는 아주 어릴 적 먹거리 문제로 인해 집을 떠나 아주 먼 길을 돌아 안성에 정착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먹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한편, 작년 미국산소고기수입문제로 전국이 촛불로 뒤덮였을 때에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도 먹거리의 자립화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아침 책읽기 시간에 선생님이 김군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해주었다. 그 책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였다. 김군은 그 책을 읽으며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건강한 유기농 먹거리로 자립화를 이루어낸 쿠바의 사례는 김군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결국 그 계기로 한 학년 진급을 위한 08년 연구보고서로 '쿠바 아바나농장을 통해서 본 유기농업과 아힘나의 먹거리 자립방안'을 써 내었다.

 김군을 위해 아힘나의 텃밭과 마을에서 논 한 마지기를 얻어 본격적인 한 해 농사수업을 지원하였다. 가능하면 기계사용을 자제하고 제초제는 물론 화학비료도 일체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논농사에 있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모를 내는 일은 비록 한 마지기밖에 안 된다 해도 농업을 전공으로 선택한 김군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아힘나평화학교의 전교생과 선생님들도 생태교육의 연장으로서 공동노동에 참여하였다.
 
  
▲ ahedu2 09년 모심기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손모내기가 두 번째인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일이라 신입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작년에 모를 한 곳에 너무 많이 심었다고 나무라시던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을 기억해서인지 올 해는 오히려 너무 조금씩 심어 며칠 뒤에 들떠버린 모를 다시 꼽아주고, 비어 있는 곳과 모가 조금 심어진 곳은 포기를 더해 심어주는 등 다시 손을 보아주었다.
 

하지만 손모내기보다 더 힘든 풀 뽑기 과정이 곧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한 마지기의 논에 자라는 풀조차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풀 뽑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비웃는 듯, 그 속도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에 겨웠다. 기숙사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아이들은 30분씩 공동노동으로 하는 풀 뽑기를 하고 아침수업을 시작하였다. 그것도 모자라면 아예 특별한 날을 정해 밭의 풀을 뽑아내기도 하고, 걷어낸 풀을 돌돌 말아 발로 땅 속 깊숙히 박아두기도 하였다. 

  
▲ ahedu1 아힘나평화학교의 논과 텃밭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드디어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 지난 주말에 김군은 이장님 댁에서 탈곡기를 빌려왔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콤푸레샤로 녹과 먼지를 떨어내고 기름칠도 해 두었다. 쓰던 낫은 숫돌에 날을 세우고, 새로 낫 4개를 더 샀다. 새 낫은 날이 잘 벼리어져 있어 잘못 다루었다가는 발을 베일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라 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전통 추수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몸에 익어 있는 윤 선생님이 계시기에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걱정보다는 추수하는 설레임이 앞섰다. 

 

  
▲ yoon 낫질의 정석을 가르치시는 성생님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본격적인 추수작업이 시작되기 전 아침 일찍, 아힘나아시아하우스 뜰에 모여 하루의 일정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낫을 사용하여 벼를 베는 방법, 손으로 벼를 쥐는 방법, 벼를 벨 때 몸의 움직임, 베어놓은 벼를 두는 방법, 벼를 날라 탈곡하는 법, 낱가리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법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듣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 법. 그저 벼를 벨 때 옆 사람과 자기 자신의 발을 베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름대로의 벼베기를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속도를 붙이던 동훈이는 이내 베어놓은 벼에 기대어 나른한 가을햇살을 즐긴다. 처음 논에 모내기를 할 때만 해도 일하기 싫어 온갖 꾀를 내며 슬슬 일을 피하던 녀석이었지만 이젠 제법 일을 겁내지 않고 달려든다. 동훈이의 무릎에 잠자리가 날아들자 이내 볏단에 슬그머니 누워 쉰다. 아힘나의 '멍때리우스' 성엽이는 오늘도 가끔 멍한 표정이 되어 있다. 아마 이 때가 성엽이가 쉬는 시간일 것이다. '멍~'하니^^... 

  
▲ dong 07학번 동훈이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 mung 09학번 성엽이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사내들이 먼저 낫을 잡고 논에 들어가자 기회를 엿보던 동훈이의 동생 지영이가 오빠의 낫을 들고 벼를 베곤 무척 신이 난 얼굴로 오빠에게 자랑을 한다. '와, 나도 낫질했다!' 농촌유학을 온 9살 의진이도 처음 잡은 낫, 처음하는 벼베기가 마냥 신기한 듯 신난 얼굴이다.
 
  
▲ JEE 07학번 지영이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 JIN 아힘나 농촌유학생 1호인 이의진(9세)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큰 엄마(생활교사)가 새참으로 빵과 고구마를 가져왔다. 아이들은 빵에 먼저 손이 가고 선생님들은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한 입 베어 문다. 늦은 오전, 신종인플루엔자로 인해 학교가 휴교를 한 덕분에 시간이 난 아이들이 오자, 낫을 건네주고 잠깐 숨을 돌린다. 

점심밥은 비빔밥에 된장국. 꿀맛이다. 동네 어르신들도 점심을 함께 하자 권하니 밭일을 멈추고 수건으로 옷을 털며 같이 비빔밥을 나누었다. 윤 선생님이 오전 벼베기와 볏단 나르기에 대한 활동을 평가하며 몇 가지 시정해야 할 것들을 다시 알려주고는 손수 시범을 보인다. 얼마 남지 않아 속도를 좀 더 올리자고 서로 격려한다.

 한 달 전에 벼가 고개를 숙여갈 무렵, 같은 논인데도 풀을 제 때에 뽑아 준 곳과 그렇지 못한 곳과의 차이가 심했다. 세번 째로 논에 풀을 뽑을 때는 아이들도 매우 힘들어하였다. 농업전공인 김현철군도 지쳐 있는 아이들을 다독일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아힘나여름캠프가 열리면 그 때 캠프참가자들에게 농활체험을 하도록 하고 아힘나의 화폐인 '힘나'를 주자고 한 것이다. 그 때 풀을 제 때에 뽑지 않고 농활체험자들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그만 20% 정도의 논이 달개비가 무성하고 피가 쑥 쑥 자라 올라온 것이다. 

  
▲ nonpee 제 때에 풀을 뽑지 못해 피가 많이 자라있다.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 JOON 풀반 벼반인 곳에서 벼를베는 병준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이제 추수를 하게 되어 보니, 벼포기 사이에 말라버린 풀들이 무성하였다. 그 사이로 비썩마른 알곡 몇 알로 엉성하게 서 있는 벼 포기를 마주 대하게 되었다. 김군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졌다. 어쩌면 벼들에게 많이 미안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 때 풀을 뽑아 주었어야만 했는데, 아이들을 독려하며 제 때에 풀을 뽑아주었어야만 했는데...'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풀들 속에서 몇 알의 이삭을 맺어놓은 벼 한두 포기를 풀섶에서 골라내어 미안한 마음, 그리고 대견한 마음으로 한 해 동안 벼의 수고를 격려해 본다. 

  
▲ ahimecoedu3 나락을 이렇게 떨어내야..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아무래도 작년보다는 소출이 적을 듯싶다. 하지만 올해의 농사수업은 김군에게뿐 아니라 아힘나 아이들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었다. 김군은 윤 선생님의 격려 속에 탈곡하는 법을 배우며 마음을 달래본다.   

지난 해 겨울, 갓 쪄온 쌀로 밥을 하니 현미밥이었음에도 찹쌀밥처럼 찰진 밥이 되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의 식사와는 달리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며 마치 명상하듯 밥상을 대하였다. 아마 올해 겨울도 그러하리라.

 

아직은 1년 내내 먹을 쌀을 자급하지는 못하지만 곧 아힘나 먹거리의 완전한 자급을 이루는데 이번 농사도 큰 가르침을 주었다. 어느 덧 저녁이 되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웠다. 

  
▲ ASHOUSE 모닥불을 피우고, 저녁만찬을 기다립니다.
ⓒ 김종수
아힘나평화학교

큰 엄마는 잡채를 내오고, 조 선생님이 고기도 구우니 한 상 푸짐한 저녁이 되었다. 내일은 남한산성의 역사를 배우고 멋진 단풍도 구경하는 가을소풍이다.  

이제 열심히 일했으니 내일 가을산행을 맘껏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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