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힘나평화학교 학생들의 가을걷이가 10월 27일(화) 아침부터 분주한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제일 마음이 바쁜 사람은 농업을 전공하는 김현철군(18)일 것이다. 아힘나 공동체에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할 뿐 아니라 먹거리의 자립화를 위한 꿈을 키워가는 기초가 될 이번 가을걷이행사 준비로 인해 많은 신경을 썼을 것이다.  김군은 지난 주말에 장갑순 이장님댁을 찾아가 탈곡기를 빌려와서 잘 돌아가는지 살펴보고 김태경선생님과 함께 콤푸레샤로 녹과 먼지를 떨어내고 기름칠도 해 두었다. 쓰던 낫은 숫돌에 날을 세우고, 새로 산 낫 4개는 잘 벼리어져 있어 잘못 다루었다가는 발목을 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추수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몸에 익어있는 윤종태 선생님이 계시기에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걱정보다는 추수하는 설렘으로 논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추수작업이 시작되기 전 아침 일찍, 아힘나아시아하우스 뜰에 모여 하루의 일정을 이야기 하고, 윤종태 선생님으로부터 추수하는 전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낫을 사용하여 벼를 베는 방법, 손으로 벼를 쥐는 방법, 벼를 벨 때 몸의 움직임, 베어놓은 벼를 두는 방법, 벼를 날라 탈곡하는 법, 낱가리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법 등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듣고 몸소 시범을 보이시는 것을 잘 봐두었다. 그러나 본 것과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 법.. 그저 벨 때 옆사람과 자기자신의 발을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름대로의 벼베기를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속도를 붙이던 동훈이는 이내 베어놓은 벼에 기대어 나른한 가을햇살을 즐긴다. 처음 논에 모내기를 할 때만해도 일하기 싫어 온갖 꾀를 내며 슬슬 일을 피하였지만 이젠 제법 을을 겁내지 않고 달려든다. 잠깐 쉬는 동훈이의 무릎에 잠자리가 날아 앉았다.  같이 쉬자고.  아힘나의 '멍때리우스' 성엽이는 오늘도 가끔 멍한 표정이 되어 있다.  아마 이 때가 성엽이가 쉬는 시간일 것이다. '멍~'하니^^.....

사내들이 먼저 낫을 잡고 논에 들어가자 기회를 엿보던 동훈이의 동생 지영이가 오빠의 낫을 들고 벼를 베곤 무척 신이난 얼굴로 오빠에게 자랑을 한다. '와, 나도 낫질햇다!'  올해 중학2년차인 지영이는 올해 무척 얼굴이 밝아졌다.

큰 엄마(생활교사)가 새참으로 빵과 고구마를 가져왔다.  아이들은 빵에 먼저 손이 가고 샘들은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한 입 베어문다.

늦은 오전, 신종인플루엔자로 인해 학교가 휴교를 한 덕분에 시간이 난 대수와 병준이, 그리고 한길이가 왔다. 덕분에 조금 지쳐있던 친구들이 낫을 건네 주고 시원스레 물을 들이킨다.  조금만 더하면 점심이다. 일을 하니 배가 많이 고팠다. 3분의 2는 베어진 것 같다.

점심밥은 비빔밥에 된장국. 꿀맛이다. 동네 어르신들도 점심을 함께하자 권하니 밭일을 멈추고 수건으로 옷을 털며 같이 비빔밥을 나눈다.

윤종태 선생님이 오전 벼베기와 볏단나르기에 대한 활동을 평가하며 몇가지 시정해야할 것들을 다시 알려주고는 손수 시범을 보인다. 얼마 남지 않아 속도를 좀 더 올리자고 서로 격려한다.   

한달 전에 벼가 고개를 숙여갈 무렵, 같은 논인데도 풀을 제 때에 뽑아 준 곳과 그렇지 못한 곳과의 차이가 심했다. 세번 째로 논에 풀을 뽑을 때는 아이들도 매우 힘들어하였다. 농업전공인 김현철군도 지쳐있는 아이들을 다독일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아힘나여름캠프가 열리면 그 때 캠프참가자들에게 농활체험을 하도록 하고 아힘나의 화폐인 '힘나'를 주자고 한 것이다. 그 때 풀을 제 때에 뽑지 않고 농활체험자들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그만 20% 정도의 논이 달개비가 무성하고 피가 쑥 쑥 자라 올라온 것이다.

이제 추수를 하게 되어 보니, 벼포기 사이에 말라버린 풀들이 무성하였다. 그 사이로 비썩마른 알곡 몇 알로 엉성하게 서 있는 벼 포기를 마주 대하게 되었다. 많이 미안해졌다.  '아, 그 때 풀을 뽑아 주었어야만 했는데, 아이들을 독려하며 그 때 풀을 뽑아주었어야만 했는데...'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풀들 속에서 몇 알의 이삭을 맺어놓은 벼 한 두 포기를 풀섶에서 골라내어 미안한 마음, 그리고 대견한 마음으로 한 해동안 벼의 수고를 격려해 본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났는지 9살 의진이가 왔다. 의진이는 아힘나의 농촌유학생 1호이다. 모처럼 제대로 농촌유학을 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안 것인지, 방과 후 논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벼를 한번 베어내고 아주 흐믓한 얼굴이 되었다.

장갑순 이장님의 탈곡기는 지금도 쓸만했다. 윤선생님은 당시의 분업체계를 설명해주시고, 혜은이는 볏단을 적당량을 현철이에게 건네주고, 현철이는 나락을 조금 떨어내곤 다시 윤선생님께 넘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무래도 작년보다는 소출이 적을 듯 싶다. 올 해는 작년에 너무 포기를 많이 잡아 심었다고 하여 올해는 지나치게 포기를 적게 심은 것 아닐까하는 것이 모두들의 생각이었다. 또한 땅에 아무 것도 주지 않았으니 지력도 조금은 떨어졌을 것이고, 더구나 풀들에게 몸살을 앓은 것들도 많아 이래저래 작년만 못할 것이다.         

어느 덧 저녁이 되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웠다. 큰 엄마는 잡채를 내오고, 조진경 선생님은 고기도 구우니 한 상 푸짐한 저녁이 되었다. 내일은 남한산성의 역사를 배우고 멋진 단풍도 구경하는 가을소풍이다.  열심히 일했으니 내일은 가을산행을 맘껏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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